텐 이야기. 1
2015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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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BN 9791186479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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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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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2 부활절 Easter
episode 3 성령강림절 Whitsuntide
외전 1 부활절 Easter
어찌되었든 이 눈앞의 남자는 아주아주 복잡한 얼굴로 잠시 동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복잡한 얼굴이었다.
남자는 한참 그렇게 나를 내려다보더니,
갑자기 옆으로 고개를 돌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빌어먹을.”
잠시 뒤에야,
나는 그게 내가 아는 대로 ‘빌어먹을’이라는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뭐냐 도대체, 라고 막 이마를 찌푸리고 한 걸음 나서기 직전, 남자의 얼굴이 갑자기 단단하게 바뀌었다.
뭔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이다…?
그렇게 생각해서 멈칫했을 때, 곧 그가 단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텐이다.”
잠시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분명히 자기소개는 자기소개였다.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이 안 되는 소개다.
얼떨떨해져서 나는 잠시 멍하니 남자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딱딱한 명령조로 입을 열었을 때는, 멍한 상태가 아니라 아예 혼란으로 떨어져 내렸던 것이다.
“나를 따라와라.”
에……?!
뭐라는 거야.
“……?!”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말해 보았자, 도대체가 지금 무슨 얘길 하는 건지…….
상황 판단이 안 된 나를 앞에 두고, 텐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자는 담담히 사실을 이야기하는 어투로 이야기를 이었다.
“이대로 있으면 네가 죽든지, 네 주위의 사람이 죽어.”
“…무슨!”
외국인이든 뭐든 이젠 상관없다. 저건 미친놈이다.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가만두지 않을 테다…!
그러나 텐이라고 자신을 밝힌 외국인은, 바로 앞에 살기등등하게 다가온 나를 앞에 두고서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가만히 있으라는 말조차 하지 않고는 태연하게 서서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단호해진 얼굴에는 뭐라고 해도 자기 뜻대로 할 것 같은 느낌이 풍겨 나왔다.
“그건 네 동생이 죽었을 때 노니시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위 사람을 하나씩 데려가고 싶어하는 거지.”
그러나 나는 노니시드라는 이상한 단어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떻게 내 동생이 죽은 걸 알지 하고 멈칫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뒷말에는 기가 막혔다. 무슨 이야기냐, 지금 설마 이 모든 불행을 동생 탓을 하라는 거야……?!
현우는 사람들에 떠밀려서 지하철 앞으로 떨어진 거다. 부모님도 나도 지하철의 CCTV를 죽어라 들여다보았지만, 원망할 사람조차 한 명도 없을 정도로, 혼자 비틀거리다 떨어진 거였다. 그건 명백한 사고였다. 지금 그런 애 탓을 해 버리면, 살아 있는 나는 뭐냐?
지금 감히 고압선의 백신을 건드려……?!
막 달려들려고 했을 때였다.
타이밍 좋게 남자가 입을 여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하지만 갈수록 가관이었다.
“난 널 오래 맡지는 않을 거다. 단지 이쪽으로 실력이 좋은 녀석을 아니까, 그 녀석한테 데려가 주겠어.”
뭐냐 이건.
우리집 가족 전부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불운하게 죽어 갔다는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지금 도를 구하는 외국인한테까지 이따위 뻘소리를 다 들어야 하는 거냐.
맹렬하게 화가 나서, 하하하, 하고 나는 웃었다. 원 저렇게 멀쩡하게 생겨서 아깝기도 하지. 정신을 차리게 해 주마.
막 덤벼들기 직전이었다.
“질문?”
남자가 태연히 되물었다.
<텐 이야기>는 작가 권이영이 2003년에 도서출판 손안의책에서 종이책으로 출간했던 작품입니다. 이 책을 전자책화하는 데 흔쾌히 동의해 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신 권이영 선생님 및 손안의책 대표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편집부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종이책으로는 절판된 상태라, 전자책으로 꼭 출간하고 싶었거든요. 작가의 치밀한 조사와 심혈을 기울인 집필이 돋보이는 이 판타지 소설은, 발간된 지 10년 이상 지난 지금 다시 읽어도 세월의 흐름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재기 넘치고 세련된 면모를 갖고 있습니다. 최강의 로아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텐과,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약한 인간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강한 백신우, 두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얽혀 가는지 함께 지켜봐 주세요!
작가정보
저자(글) 권이영
"내가 아스파라거스를 싫어해서 다행이야."
"왜?"
"내가 만약 아스파라거스를 좋아한다면 난 그걸 매 끼니 때마다 먹어야 할 거 아냐. 그건 생각만 해도 싫거든."
...루이스 캐롤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모델이 된 아가씨와 했던 대화지요. '텐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텐 이야기는 일종의 역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역설(逆設)이라는 것은 때로는 가볍고, 때로는 무겁습니다만. 결국 사고를 어떻게 뒤집어 보느냐에 따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뒤집다 보면, 내가 만들어낸 세계가 일종의 논리를 가졌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저로서는 '앗, 무사히 현실의 세계에 착상했군' 하고 느끼게 되는 때랍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게 저라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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