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연가

김지운 지음

디키스토리 2011년 11월 23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풀잎연가>

이린은 산 아래의 강가에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산은 저만큼 배경처럼 둘러 있고, 오래도록 물가에 그렇게 혼자 앉아 있었던 듯 이린의 자태는 고즈넉했다.
하진은 성큼성큼 걸어가 이린의 곁에 앉았다. 뺨으로 꽂히는 이린의 눈길이 느껴졌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너무 쉽게 찾아버려서 재미없다. 그렇지? 당신 찾아서 여기저기 헤매 다니며 고생을 실컷 했어야 하는 건데.”
하진은 이린의 손을 가두듯 꽉 움켜쥐었다.
“일어나서 도망칠 생각이라면 그만 두는 게 좋아. 도망치게 내가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
흐르는 물을 응시하며 하진은 말했다. 이린은 말이 없었다. 돌아보니 미동도 않고 앞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핼쑥할 만치 하얀 볼이 애틋했다. 이른 아침 집으로 와 할머니 품에 얼굴을 묻고 울었을 그녀를 생각하자 목이 따끔거렸다.
그러나 하진은 최대한 마음을 안으로 다스렸다. 있는 그대로 내보였다간 이린 앞에서 눈물을 보일지도 몰랐으므로. 여자 앞에서 우는 건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린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긴 싫었다. 하진은 강으로 시선을 돌리곤 평소처럼 담담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뱉었다.
“편지를 아주 잘 썼던데? 감동적이었어.”
이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작가는 내가 아니라 당신이 해야 할 거 같아. 편지 쓴 거 보니까 글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걸?”
“하진 씨.”
“답장, 주려고 왔어.”
“답장 바라고 쓴 거 아니에요.”
이린의 음성도 하진 못지않게 담담했다. 눈물을 모두 날려 보낸 이의 목소리며 어투였다. 하진은 이린을 바라보았다.
“서이린.”
“…….”
“나한테, 죽을 때까지 아무한테도 말하고 싶지 않았던 비밀이 하나 있는데.”
이린이 비로소 하진을 돌아보았다. 이린의 눈을 마주 쳐다보며 하진은 말을 이었다.
“아버지한테도 해랑 이모한테도 말하지 않은 그 비밀이 당신하고 나, 지옥엔 안 가도 되게 해줄 거야.”
하진은 가는 바람이 흩어 놓은 이린의 머리칼을 가지런히 쓸어 넘겼다.
“어때, 듣고 싶지 않아? 그 비밀이 대체 뭔지.”
이린의 눈동자가 여리게 흔들렸다.

목차

프렐류드(prelude)
1 머리꾸미기
2 눈빛
3 여기, 이렇게
4 거울 놀이
5 귀에서 입술까지
6 자존심
7 첫 남자
8 별이 내리는 밤
9 사랑한다는 말
10 그리움을 배우다
11 도쿄에서, 사흘
12 탐닉
13 결별
인테르메조(intermezzo)
14 해후
15 지진
16 사랑할 권리
17 서준
18 오직 하나
피날레(finale)
작가의 말

작가정보

저자(글) 김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