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비행법

권정일 지음

북인 2009년 10월 06일 출간 종이책 : 2008년 11월 1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현대시세계 시인선 015 『수상한 비행법-권정일 시집』. 현대시세계 시인선은 중견 시인으로 자리잡은 장석주의 첫 시집 <햇빛 사냥>을 지난 1월에 재출간하며 주목을 받은 새로운 시인선 시리즈이다. 이어 연극, 뮤지컬계의 거장이자 문화게릴라인 이윤택 시인의 시선집 <나는 차라리 황야이고 싶다>를 출간하는 등 우리 시인들의 시세계 탐구를 위한 시선집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

<수상한 비행법>은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에 등단하며 우리 시단에 처음 이름을 알린 권정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이다. 현대시세계 시인선의 15번째 시집이다. 시의 언어로 만들어낸 새로운 공간으로의 탈출을 통해 일상을 벗어난 자유로움과 놀랄만한 상상력을 선보이고 있다.

시인 권정일의 시적 지향의 혼의 자유로운 비행이다. 사회적인 질서에 포박된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일상적 공간에서 맑은 영혼의 힘으로 의미의 공간으로 비상하고픈 열망이 담겨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비행법>

신생의 아침!
이제 겨우 추락하는 법을 익힌, 날개 터는 법을 좀 더 쉽게 배운 어린 새의 행보를 본다

솜털 묽은 발톱에 푸른 힘줄이 차오르지 않아서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수많은 팔을 내밀자 물기 어린 날개가 펄럭인다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개를 접었다 펴는 쉼 없는 곡예의 아슬한 착지

어린 새는 느티나무의 첫 번째 주민으로 거듭난다 나뭇가지 끝에 앉아 느티의 불안한 잔기침을 잠재우고 어느새 한몸이다.

여물지 않는 부리로 느티의 겨드랑이를 긁어주고는 뒷발을 허공에 담근다

저 가벼워 보이는 비상
내가 보는 시선이다

나무의 진정한 주민이 되기 위한 유목의 시작이다

더 넓은 세상을 익혀 날개의 속도를 가로지른 후에 귀소할 것이다

날개에 고스란할 공포, 아득한 허공은 새의 커다란 그릇
비행법은 사라지고 한동안 비행만 있을

목차

제1부
밥그릇 무기
칸나의 독순술
화장
자본주의 혹은 종이
고속도로
공터의 행복
와일드 캣츠
불두화
꽃의 집
雜(잡)으로 살으리랏다
칼의 뿌리
검정 구두
플라톤을 패러디하다

제2부
비의 칸타빌레
강의 가족
다큐멘터리
붉은 부리갈매기
파꽃이 피는 이유
프로랄 폼 여자
드라마 보는 여자
기복씨
삽화
수상한 직업
모모
人
언더라인 3
1005호

제3부
놀
범어사
神
비행법
갓바위 서설
산책
閉(폐)
공백
초식동물
유물론
(.)
크레바스
입
강강수월래

제4부
무광택
라온 제나
알·집
우는 것들
가을,바이러스 몇 CC
아날로그 그림자
분홍,분홍!
마디
달이지 않는 시대
밥꽃
언더라인 2
호박잎 하트
어머니는 수묵화였다
나는 쓴다 얼굴 청춘

해설 - 허공의 집,혹은 혼의 궁륭·김경복

출판사 서평

허공 속에 요요한 빛을 띠는 집을 짓는 권정일 시인의 ‘화두들’
1999년 부산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시단에 나온 권정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수상한 비행법>이 현대시세계 시인선의 15번째 시집으로 나왔다.
<수상한 비행법>의 해설을 쓴 문학평론가 김경복(경남대 교수)은 “권정일의 상상력은 거기 그 자리, 도저히 사람이 갈 수 없는 허공에 요요히 빛을 뿌리고 있다. 어룽어룽 형체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인가? 땅에 붙박여 하루를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보는 일만 해도 힘겨운 일이거늘 시인은 저 아슬아슬한 공간에 자신의 삶터를 쌓고 있다. 희한한 형상의 집을 짓고 있다”며 권정일 시인의 시의 특징을 화두로 뽑아든 뒤 “허공에 집을 짓고자 하는 그녀의 의식은 생의 불모성不毛性을 자각하고 그 생의 불모성을 상징하는 지상의 집을 벗어나고자 하는 데에서 발생한다. 즉 지상의 집은 그녀의 한 생을 지치게 하고 무의미하게 만드는 비극적 공간이다. 때문에 여성의 한 사람으로서 권정일 시인은 이 집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한다”고 말한다.
권정일 시인의 탈출은 불가佛家에서 의미하는 '출가'를 의미한다며 "권정일에게 시는 자신의 존재의 비밀을 알아가는 행위이자 사회적, 존재론적 제약을 없애가는 행위임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시를 통해 시인은 저 허공에 아름답고 찬란한, 그러면서 아득한 천상의 집을 아로새기고 있음을 보게 되는 것이다. 허공에 집을 짓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식이 그녀의 의식이고, 우리 인간이 추구하는 의식임을 알 때 그녀의 시가 그려 보여준 도정은 자못 심원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며 “그녀 시가 일상의 굴레에 비루한 모습으로 보이거나 나약한 자아로 누추한 모습을 보일 때라도 권정일 시의 진정은 저 크레바스를 지나 허공 속에 요요히 빛나는 집을 짓고자 함에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글로 마무리하며 권정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대한 가치를 매겼다.

유안진 시인/ “참 기발하고, 활달하고, 거침없이 든든하고, 진솔한 감동들”
시단의 선배인 유안진 시인은 “참 기발하다. 활달하다. 거침없다. 그래 이쯤은 되어야지. 아웃사이더로서 마이너로서 인사이더를 메이저를, 세상을 중심을 오른손을…. 아무튼 이렇게 멀찍이 서 삐딱하게 꼬나보고 흘겨보고 무시하다가, 멋대로 자신 있게 휘파람 불며 자신의 길로 아무렇지도 않게 휘익 꺾어 들어서는, 앞장서는 자기 그림자를 걷어차며 받아 차며 따라가는 달려가는 뛰어가는 걸어가는 일련의 모습들을 보여주는 이 시집의 작품들. 읽으면서 읽고 나서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든든하고 진솔한 감동이 되는가 말이다.
얼마나 어려운가. 한 권의 시집이 되는 여러 편의 작품이 일련의 포트폴리오를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 힘차고 기운차고 솔직하고, 그럼에도 진지하게 거침없는 어휘를 시원스럽게 구사하여 신선하고 기분 좋은 독후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는 아리고 짜안하고 콧날 찐한 아픔 같기도 슬픔 같기도 반반이기도 한 안쓰러움과 함께 어루만져 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권정일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대해 말했다.

박후기 시인/ “퍼덕이는 비릿한 生을 내리치는, 거칠 것 없는 ‘언어의 칼’”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박후기는 권정일 시집의 시어들을 인용하며 “그의 집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거칠 것 없는 언어의 칼을 들어 비릿한 生이 퍼덕이는 붉은 도마를 내리친다. 밥과 죽음, 生死가 ‘따로 또 같이’ 그의 집 문턱을 넘나든다. 집요하게 ‘밥그릇’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곧 죽음에 관한 서론에 불과하다. 生의 결말을 향해 걸어가는 그의 자의식이 주저 없이 도마를 베고 누워 있는 풍경은 서늘하다. 그는 ‘뿌리 들려 사는’ 아찔한 벼랑 위의 집에서 무딘 칼로 ‘꿈 없는 저녁을 발라’ 내는 심정으로 시를 살고 있”다고 권 시인의 두 번째 시집에 의미를 부여했다.

작가정보

저자(글) 권정일

권정일
1999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마지막 주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