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gmi Lee Empty to Be Filled

가나아트 지음

가나아트 2012년 08월 31일 출간

작품소개

책소개

IN-BETWEEN, 차가운 호흡이 있는 제스처

미술은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라는 파울 클레(Paul Klee)의 말처럼 한 장의 그림, 그 정지된 화면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게 되는 것은 가시적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의 숨겨진 질서와 리듬,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성미의 작품은 거의 무색에 가까운 드로잉을 통해 정적이지만 그 위를 수없이 반복하며 지나갔던 동적인 흐름을 암시하거나, 공기 중으로 이내 사라져버리는 향의 연기를 고정시킴으로써 대기의 기운을 담아내는 등 사물의 외형이 아닌 본질을 묘사하기에 저마다의 시간, 경험 속에 잠재된 사유를 이끌어내며, 추상적이고 감각적인 신비한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그러나 주관적 변형을 최대한 자제하고 지극히 차분한 시선으로 우리가 존재하는 이 세계를 운행하는 내재적 질서와 생명력을 그려내기에 이성미의 작품은 복잡다단한 의식의 수면 아래에 차갑게 응고된 기억과도 같다.

목차

채워지기 위해 비워지고, 비워져야 채워지는...
生의 두 가지 흐름, 그 역설적 동반을 담아내다.

이성미는 산산이 부서진 조각, 특히 사고로 인해 부서진 차 유리의 파편들을 모아 마치 모자이크의 그림 맞추기와 같은 반복적인 손 작업을 통해, 혹은 연속적으로 반복-나열된 입체 그리드(Grid)마다 서로 차오르는 깊이의 차이를 두면서 투명한 합성수지(poly-urethane) 레이어를 반복적으로 입히는 과정을 통해 마치 시간을 초월한 듯한 빛의 아우라나 밤하늘에 펴진 별들, 얕은 바닷물이 차오르고 빠져나가는 등 마치 대자연의 순환과 질서를 드러내는 작업을 보여준다. 언뜻 보면 형태나 재료의 느낌, 혹은 구성방식이 마치 기계적 공정에 의해 제작되고 반복의 원리에 의해 만들어진 미니멀리즘 작품을 보는 것 같지만, 사실 그녀의 작품은 드로잉과 채색, 레이어(layer)를 일일이 반복하는 과정과 유리 조각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닦고 갈아내는 고된 수작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렇게 부서진 것을 다시 조합하거나, 무가치하게 버려진 무가치한 것에서 오히려 독특한 가치를 발화시키는, 일종의 ‘치유(healing)’라고도 명명할 수 있는 이성미의 작업세계는 본 전시의 제목 “채워지기 위해서 비워지고, 비워져야 채워지는(Empty to Be Filled)’ 그대로다. 서로 역설적인 듯 보이지만 변증적 순환의 고리를 닮은 그녀의 작품세계는 결국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부터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되고 이러한 생명체는 결국 다시 무(無)의 세계로 돌아가는 자연의 순환에 담긴 내밀한 질서와 호흡과 닮아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가나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