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살면
2018년 01월 10일 출간
국내도서 : 2017년 08월 01일 출간
- eBook 상품 정보
- 파일 정보 ePUB (5.36MB)
- ISBN 9791185153193
- 쪽수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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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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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는 글
지은이 연보
「아버지와 살면」 공연 기록
옮긴이의 글
추천의 글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최초의 핵무기 ‘리틀 보이’가 일본 본토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한다.
이것은 일본인뿐만 아니라 인간 전체에 떨어진 비극이었다.
그리고 …… 일본의 양심이 여기에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이야기를 꺼내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언제까지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을 셈인가. 그즈음 일본인은 아시아의 가해자이기도 했어.” 가해자였다는 의견은 분명 옳다. 아시아 전역에서 일본인은 가해자였다. 하지만 피해 의식 운운하는 의견에는 “그건 아니오!”라고 강력히 주장하고 싶다. 그 두 발의 원자폭탄은 일본인의 머리 위로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 존재 전체에 떨어졌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시 피폭된 사람들은 오늘날 핵의 존재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지구상 모든 인간을 대표해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타들어 갔다.
일본의 셰익스피어, 평생 반전·반핵을 외친 작가 이노우에 히사시의 희곡 첫 번역!
일본 현대문학을 세 부류로 나누자면 예술파에 무라카미 하루키, 사소설파에 오에 겐자부로, 프롤레타리아파에 이노우에 히사시가 있다는 일본 문단의 평가는(『이노우에 히사시 절망으로서의 웃음』, 다카하시 도시오, 2010), 이노우에 히사시의 문학사적 위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려운 것을 쉽게, 쉬운 것을 깊게, 깊은 것을 재밌게, 재밌는 것을 진지하게, 진지한 것을 유쾌하게
그리고 유쾌한 것을 어디까지나 유쾌하게”가 그의 모토. 그의 작품이 훌륭한 점은 그의 사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가 그려내는 참상은 절대 우울하지 않다. 그만의 위트 있는 대사 속에서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과 사랑 웃음을 그야말로 웃음으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극을 희극으로 만드는 작가. 바로 이노우에 히사시다.
우는 건 싫어, 웃어버리자!
‘일본의 국민 극작가’ 이노우에 히사시는 평생 반전과 반핵을 외쳤다. 그는 희곡과 소설 등 작품 속에서 일관되게 일본의 전쟁 책임을 지적하는가 하면,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시민단체를 이끌기도 했다. 그가 투철한 반전주의자가 된 데는 어린 시절 태평양전쟁(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심한 가난을 겪은 것과 함께 1962년 방송작가 시절 취재차 히로시마를 방문했다가 원폭의 참상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의 경우 원폭 피해를 입었다는 점에서 가해국이 아닌 피해국으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노우에는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국으로서 국민 모두가 책임이 있다. 다만 수많은 국민을 희생시킨 원폭의 경우 종전을 지연시킨 천황과 지배층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 원폭 3년이 지났다,
그러나 점점 더 상처가 커지는 딸에게 사랑을 찾아주고 싶은 아버지의 영혼.
도서관 사서인 딸에게 어느 날 다가온 청년. 딸은 애써 그를 무시하려고 하나 아버지는 그가 건네준 만두 하나의 의미를 찾아가며 딸을 설득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너는 원래 마음씨 곱고 밝고 총명한 아이였어. 여전을 이등으로 졸업한 재원이었지. 비범한 성품에 머리도 똑똑한 기노시타는 네 본래 모습을 한눈에 알아채고 너한테 흥미를 느낀 거야. _ 아버지
난 행복해지면 안 돼. 그러니까 이제 아무 말 마세요. _ 딸
▶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원폭 이야기를 담으라는 아버지와 거부하는 딸.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준비하는 딸 앞에 또 나타난 아버지. 딸에게 원폭의 그날을 담으라고 한다. 딸은 아름다운 이야기도 많은데 입에 담기조차 무서운 그날의 얘기를 굳이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없다고 맞선다.
니들이 수집한 이야기를 바꾼다고 하면 이러쿵저러쿵 말싸움만 늘 테니까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에 원폭 자료를 넣어 만들어보면 어떠냐. _ 아버지
이 모임은 아이들을 위한 거예요. 여기저기서 미군이 눈을 부라리고 우릴 감시한다고요. 아부지는 점령군의 권력을 몰라서 하는 얘기야. 알면 그렇게 태평한 소리 못해요. _ 딸
바로 그거다. 외워서 들려주는 이야기니까, 옆에서 바람이 불어와 네 말을 사방팔방 흩어지게 할 거야. 귀여운 아이들의 마음속을 훑고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무지개가 되겠지. 증거는 남지 않는다. 히지 산에서 불어오는 히로시마의 바람이 네 편이 돼줄 거야. _ 아버지
▶ 그날의 일을 이야기로 만들자.
원폭의 실상을 풀어내는 아버지, 아니 딸.
아버지는 이미 죽은 영혼이다. 아버지의 입으로 이 이야기가 풀어지지만 실은 딸이 생각하는 이야기인 셈이다. 결국 딸은 그날을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지만 그래도 그날의 실상이 후세에 전달되기를 바란다.
“어이, 도깨비. 니놈 귓구멍에 꽉 찬 귀지 파내고 잘 들어라. 내 손 안에 든 건 히로시마 원폭 파편이다. 그날 아침, 히로시마 상공 오백팔십 미터 높이에서 원자폭탄이란 놈이 폭발한 건 너도 알겠지? 폭발 일 초 후 불덩이의 온도는 섭씨 만 이천 도였다. 어이, 만 이천 도가 어느 정돈지 감이 잡히느냐? 태양의 표면 온도가 육천 도니까, 그때 히로시마 상공 오백팔십 미터 높이에 태양이 번쩍번쩍 두 개 뜬 거나 마찬가지지. 머리 바로 위로 태양 두 개가 일 초에서 이 초 사이에 나란히 떴으니 지상에 있는 건 인간이고 새고 벌레고 물고기고 건물이고 석등이고 순식간에 녹아내렸어. 불길이 모든 걸 집어삼켜 송두리째 녹여버렸지. 지붕의 기왓장도 녹았다. 그때 폭풍이 불어닥쳤어. 초속 삼백오십 미터, 소리보다 빠른 폭풍이. 녹아내린 기왓장이 폭풍에 휩쓸려 일제히 날아올랐다 식으면서 서릿발 같은 가시가 삐죽삐죽 섰다. 이건 뭐 기왓장이 아니라 무 강판, 아니 꽃꽂이 침봉. 이 무시무시한 가시 판으로 니놈 내장을 몽땅 갈아버리겠다. 쓱싹쓱싹 쓱싹쓱싹…….” _ 아버지
▶ 난, 누굴 사랑하면 안 돼. 홀로 살아남은 게 괴로운 딸.
아부지, 됐으니까 이제 그만하세요. 난, 누굴 사랑하면 안 돼. _ 딸
어째서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된다는 거야? _ 아버지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할 사람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하고 나만 혼자 행복할 순 없잖아. 내가 행복해지면…… 그 사람들한테 면목이 없다고요. _ 딸
▶ 살아남은 자에게 받은 상처가 더 아프다.
아키코 어머닌 날 보자마자 기뻐서 벌떡 일어나시더니 날 힘껏 껴안고는 잘 왔다고……. 근데 아키코 이야기를 꺼내시다가 갑자기 정색하고 날 노려보시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왜 네가 살았니?” “왜 우리 딸이 아니라 네가 살았어?” 나, 살아 있는 게 미안해 견딜 수가 없어. _ 딸
이런 소리 위안이 되겠냐마는, 아키코 어머닌 그때 잠시 제정신이 아녔던 게야. 그래서 그런 말을……. _아버지
아니야. 그때 히로시마에선 죽는 게 당연했고, 살아남는 게 이상한 거였어. 그러니 내가 살아남은 건 아무래도 이상해. 아부지, 나 지난 삼 년 동안 너무 괴로웠어. 여태 살아온 것도 장하다고 칭찬해주세요. _ 딸
▶ 아버지에게 가장 미안해. 그런 인간에게 행복한 자격 따위가 있을 리…….
그건 병이다, 떳떳하지 못하고 죄송한 병.
그건 병이다. 병명도 있지. 살아남아 죽은 친구들한테 미안하다는 둥 사는 게 떳떳하지 못하다는 둥 헛소리를 하는 게 그 병의 증상이다. 병명은 ‘떳떳하지 못하고 죄송한 병’. 네 기분은 잘 알겠다. 하지만 넌 살아 있어. 앞으로도 살아야만 해. 그러니 그런 병은 하루빨리 고쳐야 한다. _ 아버지
물론 아키코랑 친구들에게도 미안하다는 맘이 있어. 하지만 그 애들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너무너무 미안해 모른 척하고 있던 사람이, 바로 아부지야. …… 난 아부지를 내버리고 도망간, 비겁한 딸이잖아. _ 딸
이렇게 끔찍한 이별이 몇 만 건이나 있었단 사실을 기억하기 위해, 넌 살아남은 거다. 네가 일하는 도서관도 그런 뜻을 전하는 곳 아니더냐? 인간으로 태어나 느낀 슬픔과 기쁨, 그걸 전하는 게 바로 네가 할 일이란 말이다. 네가 그걸 모른다면 이제 너 같은 바보 멍청이한테는 기대할 것도 없다. 대신 다른 녀석한테 기대하는 수밖에. _ 아버지
다른 녀석이라뇨? _ 딸
내 손자가 됐든 증손자가 됐든. _ 아버지
작가정보
저자 : 이노우에 히사시
저자 이오우에 히사시는 1934년 야마가타 현 출생. 조치대학 문학부 졸업. 버라이어티 극단 ‘아사쿠사프랑스자’에서 문예부 소속으로 일하다 방송작가 일을 시작했다. 이후 「도원의 모험」(기시다희곡상), 『수갑 동반 자살』(나오키상), 『기리키리 인』(요미우리문학상, 일본SF대상), 『도쿄 세븐로즈』 등 희곡, 소설, 에세이를 아우르는 각종 분야에서 폭넓게 활동했다. 1984년에 극단 ‘고마쓰자’를 결성해 자신이 집필한 희곡을 직접 상연했다. 2010년 폐암으로 별세했다.
역자 : 정수윤
역자 정수윤은 경희대와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다자이 오사무 전집 『만년』, 『신햄릿』, 『판도라의 상자』, 『인간실격』,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예적인, 너무나 문예적인』, 오에 겐자부로 『읽는 인간』, 다케히사 유메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카자키 다케시 『장서의 괴로움』,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은 책으로 『모기소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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