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물질의 사랑
2020년 08월 13일 출간
국내도서 : 2020년 07월 20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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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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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천선란 첫 소설집!
우주비행사가 된 딸의 이야기를 자전적으로 그린 〈사막으로〉에서 시작해, 지구의 바다 생물 멸종을 극복하기 위해 토성의 얼음위성 엔셀라두스로 날아간 탐험대가 만나게 된 외계생명과의 극적인 조우를 다룬 〈레시〉, 한때 과거를 함께 했으나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생겨버린 2인의 얘기를 다룬 〈그림자놀이〉, 알에서 태어나 배꼽이 없는 소녀도 소년도 아닌 “어떤 외계인”의 ‘우주를 가로지른’ 사랑 이야기를 비롯 작가 천선란의 눈부신 등장을 알려줄 여덟 편을 수록했다.
02_너를 위해서_37
03_레시_43
04_어떤 물질의 사랑_89
05_그림자놀이_155
06_두하나_199
07_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_259
08_마지막 드라이브_293
? 작가의 말_331
첫문장 사막에 대해 글을 써보는 건 어떠니?
P.35 어느 곳이든 네가 나아가는 곳이 길이고, 길은 늘 외롭단다. 〈사막으로〉
P.60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우리 엄마 아프게 하는 거 다 사라져라. 〈레시〉
P.62 “한국 며느리는 식탁을 엎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대체로 뭘 못 하게 하거든. 〈레시〉
P.88 “만나서 반가워요. 당신을 기다렸어요.” 〈레시〉
P.91 내 인생의 첫 난제는 내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거였다. 〈어떤 물질의 사랑〉
P.97 “사람들은 가끔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해. 그냥 상처 주고 싶어 해. 그러니까 저 사람이 왜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지 네가 생각할 필요 없어.” 〈어떤 물질의 사랑〉
P.98 너는 알에서 태어나서 배꼽이 없어. 엄마 배에 있던 게 아니니까. 〈어떤 물질의 사랑〉
P.120 네가 자꾸 눈길을 끌었다는 거, 네가 특별했기 때문에 그랬던 거 아니야. 창피해서 돌려 말했는데 그냥 첫눈에 반한 거였어. 혹시 오해할까 봐. 〈어떤 물질의 사랑〉
P.135 “결국,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걸 잊으면 슬퍼지는 거야.” 〈어떤 물질의 사랑〉
P.152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어떤 물질의 사랑〉
P.174 “보고 싶었어. 수고했고, 기다렸어.” 〈그림자놀이〉
P.181 모든 대화는 초능력이야. 〈그림자놀이〉
P.188 하필 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이 네 아래에 있었다. 〈그림자놀이〉
P.250 눈치 보고 자란 딸들은 가끔 그래. 짐이 덜 되기 위해서 자꾸 자신의 부피를 줄여. 몸짓도, 소리도, 존재감도. 그렇다고 쪼그라들었다는 건 아니야. 〈두하나〉
P.328 “행복하면 인간은 어떻게 되나요?”
“미래를 걱정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 적어도 그 순간에는 그래.” 〈마지막 드라이브〉
정세랑의 다정함과 문목하의 흡인력을 두루 갖춘
역대급 괴물 신인 작가 천선란의 첫 소설집!
지울 수 없는 흑백 타투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 김창규, 소설가
아름답고 서정적이며, 밀려드는 감정의 파도에 그대로 잠기고 싶은 소설들이다.
- 김초엽, 소설가
지울 수 없는 흑백 타투 같은, 2의 세계
사변이 경계를 지워버리고 모든 장르가 서로 화기애애하게 구느라 바쁜 요즘, 글세계에서 작가의 색깔을 첫 모습과 주 종목으로 나누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천선란 작가는 2020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대상을 받았다. 한국과학문학상은 과학소설, 그러니까 SF 소설에 주는 상이다. 알다시피 작가를 알기 위해 그런 사실에 너무 집중하면 틀이 생긴다. 좋은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에게 틀은 아마도 도움보다는 해를 더 많이 줄 것이다. 피해를 받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책을 열고 읽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미적거리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
목차에서 이 작품집에 실린 8개의 글 제목을 잠시 들여다보면 적어도 세 개의 작품에서 하나의 숫자를 떠올릴 수 있다. 〈두하나〉는 말할 필요가 없을 테고, 〈너를 위해서〉는 ‘나’와 ‘너’를 상정한다. 그리고 〈그림자놀이〉. 그림자가 생기려면 광원을 가로막는 사물이 있어야 한다. 광원만으론 그림자를 만들 수 없다. 광원이 세계라면 사물과 그림자는 그 세계 안에 있는 ‘존재’들이다. 사물과 그림자는 한 쌍이어야 한다. 따라서 숫자는 2다.
이 작품집에서는 수많은 2를 찾아볼 수 있다. 단편집이 대개 그렇지 않으냐고 묻는다면, 천만에. 이 책에서 2는 구조와 직결되어 있다. 〈그림자놀이〉는 한때 과거를 함께 했으나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생겨버린 2인의 얘기다. 한 사람은 억지로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고, 다른 한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가까워질 수 있는 힘을 갖고 태어났다. 둘 중 한 사람은 인위적으로 ‘감정과 공감’을 절개해 버리지만, 현실 속의 통증클리닉이 그러듯, 고통 그 자체만 사라졌을 뿐 원인은 남아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주인공 ‘이라’가 애써 외면하려는 노력을 보고, 그게 곧 지울 수 없다는 반증임을 안다. 그리고 아마도, 작가가 작품의 정서와 세밀하게 조각한 어휘의 부조를 제 손으로 배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림자놀이〉의 끝에 도달한들 가슴의 답답함이 눈 녹듯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 2는 〈너를 위해서〉에서 갑자기 혈육과 생명의 의미(또는 역설, 또는 잔인함)를 툭 던지고는 〈레시〉와 표제작 〈어떤 물질의 사랑〉을 낳는다. 두 작품은 태생부터 ‘바깥’에 있는 존재를 이야기하고, 그 바깥을 강조하기 위해 ‘안쪽의 상황’을 촘촘하게 보여주고, ‘엄마’와 엄마가 사랑하는 존재를 이야기한다. 이 두 글을 모두 읽으면 ‘기시감’이라는 단어가 모락모락 떠오를 것이다. 〈레시〉는 토성의 위성인 엔셀라두스가 주 무대고 〈어떤 물질의 사랑〉에서는 지구가 그런 무대에 해당한다. 하지만 글이 막바지를 향하면서, 〈레시〉의 엔셀라두스는 엄마인 승혜에 의해 결국 인간이 사는 곳과 같으면서 그와 동시에 다른 ‘지구’로 확장된다. 〈어떤 물질의 사랑〉은 이야기의 끝에서 새로운 2가 탄생하면서, 지구가 뒤에 남고 저 먼 바깥이 안쪽으로 활짝 열린다.
그렇게 〈그림자놀이〉와 〈레시〉와 〈어떤 물질의 사랑〉은 (심지어 목차 순서를 봐도) 바짝 달라붙어서 구조적인 다중우주를 이룬다. 다중우주란 크게 같고 은근히 다른 우주의 모음을 가리킨다. 세 작품 모두 관계와 외면, 이해와 오해에 관해 얘기한다. 그 2 곱하기 2 속에서 낯선 자와 익숙한 세계가 서로 거리를 좁히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춤을 추고 있다. 세 작품은 구조가 비슷하고 등장인물이 겪는 고통과 치료의 양상까지 흡사하다. 하지만 셋을 나란히 겹쳐놓고 대차대조표를 만들어보는 순간, 세 개의 우주가, 꽤 무겁고 힘겹게 다중우주를 형성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미니 3부작’을 감상했다면 이제 조금은 숨을 돌리고, 가슴을 활짝 펴도 된다. 〈두하나〉는 금세 알아챌 수 있는 은유와 선명하기 그지없는 서사가 장점이지만, 그 선명함이 작가 고유의 신선함까지 도달했는지는 의문이다. 반면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는 작가가 독자에게 조금 더 친절해보겠다고 마음먹은 듯, 그리고 작품 내내 호흡을 조절하겠다고 마음먹은 듯 소심하면서 탄탄한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드라이브〉는 책의 첫 쪽부터 글을 꼭꼭 씹으며 달려온 독자에게 작가가 살짝, 아주 살짝 미소를 짓는 것처럼 그리 버겁지 않은 여운을 남겨준다. 〈사막으로〉는… 내가 편집자라면 ‘작가의 말’ 자리에 이 글을 넣었을 것 같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에 하나 단편집 〈어떤 물질의 사랑〉이 첫 장을 넘기기보다 이 글 토막을 먼저 보는 독자가 있다면 〈사막으로〉를 가장 나중에 읽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
이 작품집에는 매끈하니 누구나 수집하고 싶은 조약돌이 있는가 하면, 손을 대는 위치에 따라 다칠 수도 있는, 한 귀퉁이가 살짝 깨진 기암도 있다. 유독 그런 기암에 해당하는 작품은 〈레시〉와 〈그림자놀이〉이다. 천선란 작가는, 적어도 이 작품집 안에서는, 궁금증이나 호기심으로 독자를 결말까지 유인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시〉와 〈그림자놀이〉에서 끝마무리에 쉽게 고개를 끄덕이기는 어렵다. 작가는 할 얘기를 다했건만 그 끝은 깨져있다.
그래도 작가는 다른 힘으로 (힘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묵묵하고 끈기 있게 깨진 부분을 메꿔나간다. 그 힘은 핍진에 있고, 고통과 회피 속에서도 절대 눈감지 않는 시선의 날카로움에 있다. 그 두 가지는 지울 수 없는 흑백 타투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그게 천선란 작가의 선택이다. 그 선택의 결과 외계인과 바이러스와 초능력 등이 클리셰처럼 등장했다가 투명하게 사라지고 이중삼중의 은유로 작동하진 못했지만. 글머리에서 SF라는 단어 때문에 틀부터 세우지 말라고 전제했던 이유다.
그리고 아마, 천선란 작가가 둘 중 하나만 선택하지 않고 (또는 희생하지 않고) 둘 모두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가능성 역시, 모순되게도 그 힘에 있을 터다. 양손검을 천 번 만 번 휘두르다 보니 어느새 양손검뿐 아니라 두 개의 한손검까지 능숙하게 다루고 마는 작가가 간혹 있다. 천선란이 들고 휘두른 양손검의 날 끝에서, 거기 실린 힘에서 그 가능성을 본다.
- 김창규, 소설
작가정보
1993년 인천에서 태어나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단국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동식물이 주류가 되고 인간이 비주류가 되는 지구를 꿈꾼다. 작가적 상상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늘 고민했지만, 언제나 지구의 마지막을 생각했고 우주 어딘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꿈꿨다. 어느 날 문득 그런 일들을 소설로 옮겨놔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부분의 시간 늘 상상하고, 늘 무언가를 쓰고 있다. 2019년 9월 첫 장편소설 《무너진 다리》를 출판했고, 2019년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에서 《천 개의 파랑》으로 장편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작가의 말
나는 정말로 소설 쓰는 게 무섭다
소설을 쓰는 게 너무 어렵고 즐겁다. 무섭고 설렌다. 언제라도 그만두고 싶지만, 언제까지나 하고 싶다. 나는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쓴다는 행위가 무엇을 내포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만든 세계에 단 한 명이라도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다.
단편소설을 쓸 때는 보통 ‘감정’하나만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래서 그런가, 내가 쓴 단편소설들은 전부 형태가 불분명하고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긴 이야기를 쓸 때만큼 구체적인 세계를 그리지 않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쓰고 나면 소설들이 어딘가 뜨뜻미지근하다.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느꼈던 감정을 읽는 사람도 느꼈으면 좋겠는 바람만 있을 뿐이다.
세상을 알아갈수록, 지구는 엉망진창이다. 바꿔야 할 것이 너무 많은데 인구수만큼 존재하는 사공이 산도 아닌 우주로 날려버리는 것 같다. 나 하나가 방향을 잡고 노를 젓는다고 해서 바뀔까? 내가 가는 방향을 옳은 방향일까? 이런 생각들을 언제나 하고 있지만, 결론은 하나다. 저어야 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나는 아이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세대이고, 내 10대는 무대 위의 아이돌과 함께 버무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시기를 추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그때 유행했던 아이돌의 노래와 춤이 있다. 어느새 나는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고, 내가 선망했던 아이돌들은 은퇴를 했거나, 연기를 하거나, 혹은 세상에 없다. 한때 나의 영웅이었고, 내 시절이었던 그들은 왜 떠나야만 했을까. 인사 한 번 나눠보지 않았던 그들의 새벽이 서러워 덩달아 뒤척였던 새벽이 많았다. 어떤 말을 하고 싶다가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해 한숨만 쉬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너는 그 친구들과 또래라 힘들어 하는구나.”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딱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누구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일이구나. 또 하나는, 그렇다면 나는 이 감정을 잊지 말아야겠구나.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이 전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소설집에는 내가 간직해두고 있던 감정들, 분함과 억울함, 쓸쓸함과 서러움, 외로움과 기괴함을 담고 있다.
〈사막으로〉는 자전적인 이야기에 가깝다. 덤덤하게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언젠가 한 번은 쓰고 싶었다. 〈너를 위해서〉는 낙태죄 폐지를 외쳤던 2019년에 썼다. 〈레시〉는 환경문제를 테마로 잡고 시작했던 이야기였다. 〈어떤 물질의 사랑〉은 정말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은 국경도 없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랑에 국경도 없는데, 사람들은 왜 그렇게 진정한 사랑의 필수조건을 붙이는지 모르겠다. 〈그림자놀이〉는 상처 받지 않기 위해, 타인의 감정으로부터 지나치게 멀어지려는 나를 느꼈던 때 잡은 소재이다. 〈두하나〉는 서글펐던 새벽에 몇 번이나 생각했던 문장을 옮겨 적을 이야기가 필요해서 구상하게 되었다. 〈검은색의 가면을 쓴 새〉는 자본주의의 기괴함에 대해, 그리고 〈마지막 드라이브〉는 추돌시험을 위해 쓰이는 ‘더미’가 최첨단 시뮬레이션 때문에 직장을 잃는다는 기사를 읽고 쓰기 시작했다. 뭐랄까, 너도 기술의 피해자구나… 싶었다.
나는 정말로 소설 쓰는 게 무섭다. 그래서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가끔은 다 쓴 이야기를 그대로 휴지통에 넣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쓰고 싶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뜨뜻미지근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2020년 여름
천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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