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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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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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봄: 청춘의 맛
라일락과 순대
만두다운 만두
김밥은 착하다
부침개꽃을 아시나요?
젓갈과 죽의 마리아주
2부 여름: 이열치열의 맛
여름의 면
물회, 그것도 특!
땡초의 계절
여름나기 밑반찬 열전
3부 가을: 다디단 맛
찬바람 불면 냄비국수
급식의 온도
가을무 삼단케이크
4부 겨울: 처음의 맛
그 국물 그 감자탕
솔푸드 꼬막조림
어묵 한 꼬치의 추억
집밥의 시대
5부 환절기
까칠한 오징어튀김
삐득삐득 고등어
콩가루의 명절상
졌다, 간짜장에게
(…)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틈만 나면 술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들이 작가가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충고했다. 나도 정신을 차리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앞으로 당분간은 술이 한 방울도 안 나오는 소설을 쓰겠다고 술김에 다짐했다. 그래서 그다음 소설을 쓰면서 고생을 바가지로 했다.
A와 B가 만나 자연스럽게 술집에 들어가 술을 마시며 대화하는 내용을 쓰다 화들짝 놀라 삭제 키를 누르거나 통째로 들어내는 일이 잦다보니 글의 흐름이 끊기고 진도가 안 나가고 슬럼프에 빠졌다. 모국어를 잃은 작가의 심정이 이럴까 싶을 정도였다. 다시 나의 모국어인 술국어로 돌아가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 그 결과 주인공이 술집에 들어가긴 했으나 밥만 먹고 나오는 장면으로 소설을 마감하는 데 가까스로 성공했다. 그러자니 얼마나 복장이 터지고 술 얘기가 쓰고 싶었겠는가.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다 산문으로나마 음식 얘기를 쓸 수 있게 되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다.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光復)’의 감격을 알겠다. 드디어 대놓고 술 얘기를 마음껏 할 기회를 잡았구나 싶다. “음식 관련 산문인 줄 알았는데 웬 술?”이란 반문은 내게 진정 무의미하다.
_pp.7~8 ‘술꾼들의 모국어’ 중에서
책에서는 계절에 어울리는 다양한 음식들이 총 5부, 20개 장에 걸쳐 소개된다. 대학 시절 처음 순대를 먹은 후 미각의 신세계를 경험하고 입맛을 넓혀가기 시작한 저자에게(‘라일락과 순대’) 먹는 행위는 하루를 세세히 구분 짓게 하며, 음식은 ‘위기와 갈등을 만들기’도 하고 ‘화해와 위안을 주기’도 하는 중요한 매개체이다. 매운 음식에 대한 애정(‘땡초의 계절’)은 운명과도 같은 것이고, 단식 이후 맛보는 ‘간기’는 부활의 음식에 다름 아니다(‘젓갈과 죽의 마리아주’). 창작촌 작가들과의 만남에서도(‘급식의 온도’), 동네 중국집 독자와의 만남에서도(‘졌다, 간짜장에게’) 음식은 새로운 관계 맺음에서 제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낸다. 이 밖에도 제철 재료를 고르고, 공들여 손질을 하고, 조리하고 먹는 과정까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그야말로 최고의 음식을 먹었을 때의 만족감을, 쾌감에 가까운 모국어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이 산문집은 주류(酒類) 문학의 대가 권여선이 소설에서는 미처 다 풀어내지 못한, 그리고 앞으로도 하지 못할 그야말로 ‘혀의 언어’로 차려낸 진수성찬이다.
[발췌문]
술꾼은 모든 음식을 안주로 일체화시킨다. (…) 내게도 모든 음식은 안주이니, 그 무의식은 심지어 책 제목에도 반영되어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를 줄이면 ‘안주’가 되는 수준이다. 이 책 제목인 《오늘 뭐 먹지?》에도 당연히 안주란 말이 생략되어 있다.
“오늘 안주 뭐 먹지?”
고작 두 글자 첨가했을 뿐인데 문장에 생기가 돌고 윤기가 흐르고 훅 치고 들어오는 힘이 느껴지지 않는가.
_p.10 ‘술꾼들의 모국어’ 중에서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나는 벗들의 권유로 처음엔 오만상을 찡그리며 순대 하나를 먹었지만 오물오물 씹고 나더니 의외로 맛이 괜찮다며 또 하나를 먹었고, 급기야 나중에는 너무 맛있다며 순대를 마구 집어삼켰다는 것이었다. 믿을 수 없었지만 친구의 증언 외에 내 속에서 나온 강력한 물증까지 있으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로 나는 순대를 잘 먹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다소 역겨운 안주가 나와도 ‘에잇! 나는 순대도 먹은 년인데 이 정도야!’하는 정신력으로 눈 딱 감고 먹게 되었다.
_p.21 ‘라일락과 순대’ 중에서
비싼 백명란은 한 쌍씩 랩으로 곱게 싸서 유리그릇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먹고 싶을 때 바로 꺼내 사각사각 썰어 다진 파와 참기름을 뿌려 구운 김에 싼 밥 위에 얹어 먹는다. 이때 밥은 아무리 여름이어도 따뜻해야 좋다. 따뜻한 밥 위에 셔벗처럼 섞이는 언 명란 맛이 기가 막히다. 저렴한 파지명란은 깨진 명란을 말하는데, 기왕 깨진 것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다진 파에 매운 고추를 왕창 다져 넣고 야무지게 섞어놓는다. (…) 주로 파지명란은 반찬으로 먹고 백명란은 안주로 먹는다. 안주는 소중하니까.
_PP.116~117 '여름나기 밑반찬 열전’ 중에서
오늘 밤 나는 심심하게 된장을 풀고 맛국물용 흑새우 몇 마리 넣고 아욱 넣고 두부 몇 점 넣어 된장국을 끓였다. 삐득삐득 고등어 중 한 마리는 바작바작 굽고 한 마리는 감자 깔고 땡초 넣은 양념에 맵게 조렸다. 생선을 말리면 살이 단단해지고 깊은 맛이 난다. 뜨거운 밥 한술에 구운 고등어 살을 뜯어 먹는 맛은 기름지고 고소하고, 소주 한 모금에 땡초 곁들여 조린 고등어 살을 먹는 맛은 배릿하고 칼칼하다. 고등어조림의 감자를 잘라 먹거나 아욱된장국을 떠먹으면 입안의 비린내가 싹 가신다.
_p.228 ‘삐득삐득 고등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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